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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 대한 본질적 물음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회라는 공개적인 과정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은 매우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일은 또한, 피할 수 없는 어떤 위험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을 창조해 내는 일과 전시회를 통해 그것을 사회화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지향하는 목표도 다르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작가는 무엇을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며, 어떤 재료를 사용할 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반면에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은 자신이 바라다보는 작가의 작품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고, 어느 성향과 사조에 속하며, 그 영향력은 무엇인지 등등의 사회적인 가치와 의미를 따져보는 것에 골몰한다. 양자가 갖고 있는 이러한 차이점은 종종 작가의 작품이 전시회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든가 또는 전시회가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성을 간과해 버리고마는,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끝나버리기 쉽다. 그렇다면 이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은 무엇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결론적으로 말해 서로에 대한 깊이 있고 진정한 이해만이 이 문제점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결의 실마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종학이라는 작가를 만나 그의 작업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기를 알게 된 동기는 1995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 95:질, 량, 감>이라는 전시와 지난 해, 9월 일본 동경국립근대 미술관에서 시작되어 현재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으로 순회전시중인 <90年代의 韓國美術로부터 - 等身大의 物語>전시를 기획하면서 부터이다. 두 전시 모두 90년대 한국현대미술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의식을 독창적 조형방법으로 실현하고 있는 작가발굴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의 경우는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큐레이터들에 의해 전시가 기획되었다는 점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에 대해 어떤 사전 지식도 없는, 단지 90년대 한국현대미술을 과장됨 없이 바라보고자 했던 - 그 의도는 等身大 라는 전시부제가 암시하고 있다 - 일본 큐레이터에 의해 그의 작품이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거대한 사과나 배, 포도, 새우, 생선을 즐겨 그려내는 이 작가의 그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유추토록 하는 것일까? 김종학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 온 전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3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던 이 작가는 새하얀 캔버스에 인체의 한 부분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작품을 선보였다. 가상적 이미지 - 생명력이라 명명된 일련의 이 작업은 이후 「가상적 이미지 - 인간의 굴레」라는 연작으로 발전되면서 인간의 한계적 상황, 즉 절망이나 죽음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만들어 내었다. 마임극같은 연극적 요소를 도입한 것처럼 보이는 당시의 작품들은 마치 한 사람의 연극배우가 흰막 뒤편에서 온갖 몸부림을 쳐보지만 도저히 벗어나올 수 없는 덫에 갇혀버렸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작가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였다. 1989년 김종학은 도불을 결심한다. 자신을 자꾸만 함몰시키는 매너리즘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전혀 다른 환경에 자신을 내몰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전에 생활하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파리 생활 속에서도 이 작가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또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나는 무엇을 그릴까? (또는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떻게 그릴까?에 대한 현대미술가에 있어서 숙명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을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묻고 있었다.
언젠가 이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서양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파리 생활을 시작하면서 유난히 그의 눈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배와는 생김새와 맛이 다른 서양배였다는 것이다. 꼭지 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반대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요철이 더욱 분명한 서양배의 생김새가 그에겐 신선한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의 이와 같은 충격은 사물에 대한 소박하지만 진지한 관찰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표현되는 커다란 포도송이, 발라먹고 남은 생선가시, 두 마리 오징어, 사과 조각과 같은 소재들은 이렇게 등장하였다. 파리의 골목골목에 붙어 있던 낡은 포스터들을 배접하여 200호, 300호 심지어는 500호까지 확장시킨 새로운 지자체로서의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이 대상물들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예상치 못한 거대한 크기로 확대되어 그려진다. 매끄러운 표면 위에 기계적이고 미니먹적인 표현 방식을 취했던 그의 이전 작업과 비교해 볼 때, 90년대에 그려진 그의 회화작품은 강한 질감을 지닌 바탕 위에 매우 회화적이고 표현적인 양상을 보여 준다. 이렇듯 완전히 상반된 표현상의 변모에도 불구하고 김종학 작업의 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2차원의 편면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화가로서의 신념일 것이다. 그것은 어느 무엇보다도 강한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흰색 바탕 위에 검은색을 주조로 한 단색조로 그려진 대상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포스터에 인쇄된 인물이나 사물 또는 문자의 이미지와 결합시켜 이중적 이미지를 연출한다든가 역시 포스터로 연결된 바탕 면을 부식시킨 커다란 갈색조의 철판처럼 보이도록 채색하고 이를 보강하기 위해 나사와 볼트로 조여주는 것 등 모두가 위에서 언급한 회화적 표현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종학의 거대한 화면은 35×35×17 cm의 작은 나무상자로 분절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도 역시 클로즈업 된 사과와 같은 사물들이 나무 상자의 표면 위에 그려진다. 여기에서 특히 사과의 의미는 그가 그려 낸 모든 사물들의 상징물로서 존재한다. 마치 세잔느가 그의 화실에 놓여 있는 사과를 응시하고 거듭 그려냄으로써 현대회화의 조형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 경계를 확장시켰듯이 김종학의 사과는 이 작가의 지속적인 문제의식, 즉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회화적 본질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결정체로서 자리하고 있다.
김종학은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견지하고 있는 몇몇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이러한 열정적인 노력이 90년대 한국 현대미술 한 단면을 그의 그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끔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내용 그리고 형식의 본령에 함께 다가갈 수 있었던 기억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미술세계 97년 2월